돌아온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Quise verte de vuelta!
양호
Buenos Aires.
¡Quise verte de vuelta!
양호
저는 간이식을 받았습니다.
10년 넘게 간경화가 서서히 진행되던 중 3cc정도의 암 2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유일한 치료는 간이식뿐었습니다. 그것도 빠른 시일내에.
앞으로 간이식을 받으셔야된 분이나 받으신 분들과 서로 지식을 나누고, 제 체험 수기가 혹 다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앞으로 얼마나 계속 쓸수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래 오래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꿈은 이렇게 시작했어요
자그마치 42년전, 1971년 18살 푸른 꿈을 안고 시작한 남미의 이민 생활.
1월달이 한여름인 나라, 아마도 판암으로 기억나는 그 큰 비행기에서 내려,
풋풋한 풀내음과 섞여오는 습기의 냄새도 기분좋았던 날.
어머니, 아버지, 나 그리고 남동생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흘러간 가요처럼,
물설고 땅설은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삶의 무대를 펼쳤다.
그리고 24년의 남미 생활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다시 떠난지도 18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부에노스의 땅을 밟았다.
약간은 늙은 소년. 철이 하나도 없는 18살은 청년이란 이름이 과했던 시절.
꿈만 크고, 파란 하늘이 내것인줄 알았던, 속없는 그래도 청춘을 불살랐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이제 늙고 병들어, 코끼리 제 무덤 찾아가듯,
태어나 가장 오래 살았던 땅으로 돌아 왔다.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것이라 기다리며 돌아왔다.
불살라버린 청춘을 한번 더 돌려달라고.
2. 복병은 어디에나
2013년 1월말 배가 아프고 열이 올라, 찾아간 닥터 B는 그날로 입원을 시켰다.
담석이 문제를 일으킨것 같다고.
그러나 1주일간의 많은 검사는 거의 3cm가되는 두개의 암이 간에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일단 퇴원을 하고 LA에서는 가장 큰 병원의 하나인 UCLA에서 암전문팀과
상담을 시작했다.
10년전 알콜성 간경화 진단을 받고, 술끊고 담배끊고 내 나름대로 스트레스
줄여가며 건강 생활에 신경을 써왔고, 연 2회 이상 정밀 검사 받으며
콘트롤 해와서 크게 걱정은 안했는데..
10년전보다 건강 상태도 훨씬 좋아졌고, 여러 검사 수치도 느리지만 정상으로 서서히 복구하고 있었고….
이제 해결은 간이식밖에 없다는데, 전 세계적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간이식
순서는 1년이 훌쩍 넘어 이년 가까운 시간 후에나 가능하다니…
그간 전이가 되어도 그만, 몸이 못견뎌도 그만… 어두운 구름이 꽉 끼여버렸다. 늙은 몸 살려볼까 젊은 이들의 부분이식도 못할일이고.
건강이 제일이라고 10년전 하던 사업도 접어버렸고, 3년전 부동산 파동에
직격탄을 맞아, 집도 줄이고 졸라매던중에, 참 이런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어머니 아버지 약하시면서도, 90세 전후로 돌아가셔셔, 그래도 단명하는 집은 아니니까 하고 속으로 위안했는데. 아버님 대상을 치른지 1년도 안되 찾아온
소식.
미국을 떠나기 며칠전 들린 묘소에서는, 야속한 마음도 들더군요. 30년이 넘게 모셨는데.. 나는 몰라도 안사람은 얼마나 허탈할지..
이제 우리도 재미있는 황혼기를 지내볼까 하는 참에. 좀 도와주시지..
3. 다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
서울의 대척점에 가장 가까운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결국은 내가 자란 서울에서 가장 먼 세상끝이란 이야기.
아르헨티나 거주하는가장 친하던 친구의 부인이 소식을 듣고, 자기네 주치의와 상의해보자고 했다. 듣고보니 30년전부터 우리 가족 모두의 주치의였던 바로 닥터 클레인이었다.
모든 검사 서류를 보냈더니, 마침 이분이 아르헨티나 유명 장기 이식센터의
이식 환자 관리 센터의 디렉터가 되어있었다.
미국 병원과 대학에 자주 연구, 연수, 심포지움에 참석하기때문에 미국 이식
현황에 대해 너무나 잘알고 있었고.
그는 유씨엘에이 암, 장기 이식 센터팀과 다른 의견을 내어놓았다.
암이 3cm 이상이 되면 이식 성공율이 확 떨어지고, 이식 대기자 신청에도
문제가 있을수 있으니 이것 저것 하다가 시간 허비말고, 가능하면 무조건 미국 이식센터에 등록하고, 아르헨티나로 급히 와 이곳에도 이식 대기 등록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성 부부가 무조건 자기네 믿고 빨리 오라고 했다.
미국 거주하는 누나들도 모두 도움을
주셨다. 특히 가장 어려운 상태의 누나가 너무 크게 도와주셔 뭐라고 할말이
없다. 아마 꽁꽁 모아둔 은퇴 자금일텐데. 모두 모두 너무 너무 고마워요.
병치료가 돈없이 마음 편히 되겠어요?
미국에서는 우선 조직 검사, 일차 암치료를 한후에나 등록을 고려한다고 해서, 일단 3월 10일 아르헨티나로 입국했다.
3월 11일 입원해 이틀간 필요 검사 모두 끝내고, 국가 관리 장기 이식 기관에 등록 신청후 3월 21일 등록 필 통보를 받았다.
3월 13일밤 TACE 일차 암치료를 받았다. 그후 5일간 평균 국부 항암 치료후
부작용보다 몇배 심한 부작용으로 아주 고생을 했고, 백혈구 수치가 거의 제로 상태로 내려갔다. 주사로 억지로 약간 증가를 시킨후 서서히 백혈구 수치가
오르기 시작하자 8일만에 일단 퇴원을 시켰다.
일주일간 서서히 회복이 되던중 별안간 복부 통증으로 다시 입원. 20년이상
보관해온 담석이 (나는 사리라고 우겨대던) 발단이 되어 시작한 통증은, 다시
백혈구와 플락 레벨을 제로상태로 끌고가 매일 오만가지 검사로 시달렸다.
문맥 트롬보시스가 급성으로 일어나 90%이상 꽉 막힌것이 발견되어 일단
먹는 약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다. 백혈구 증가 주사를 매일 맞으며.
다행히 24간 투여되는 몰핀으로 통증은 참을만 하였다. 10일후 퇴원을 하였고, TACE후 이렇게 고생하는 케이스는 정말 못보았다며 이식 수술은 훨씬 고생이 적다고 했다. 아이 거짓말도...
그후 5월말 간제공이 되었으나, 간상태가 주치의 마음에 안들어 연기되었다.
등록 3개월이 다되어가던 6월 20일 밤 급히 입원 통보를 받았다.
6월 21일 새벽 내나이 절반이나 될까말까한 젊은간을 이식받았습니다.
이식센터에서 헬리콥터로 한팀이 가서 적출해오고, 다른팀은 이식 준비
시작하고 해서, 수술시간도 8시간 정도로 짧았다고 하며 2시간후 깨어나기
시작했다고 이식팀들 모두 너무 좋아 했습니다.
막혀있던 문맥때문에 바이패스용 여분의 혈관까지 가져왔는데, 오픈하니
문맥이 뚤려있어 수술이 훨씬 빨랐다고 했습니다.
수혈이 60팩이나 되었다지만.
다행히 현지 공장 경영하는 친구들이 직원들을 단체로 보내며 헌혈하여 주어서 혈액센터에서도 오케이! 알베르또, 홍열, 단떼 모두 정말 고마워.
경과가 너무 좋아 6일만인 2013년 6월 27일, 어제 퇴원해 집으로 왔습니다.
배에는 아직 두개의 복부액 제거용 흡입 방울을 두개 달은채.. 하루 300 - 400cc 씩 피섞인 물이 계속 나오는데.
수술 3일만에 통증약 제거, 4일과 5일째에 링거용 혈관 주사 모두 제거.
목에 2개 팔에 하나를 다 빼주니 날라갈것 같다. 간호사가 샤워도 시켜 깜짝
놀랐다. 와이프가 의사가 거짓말 안시켰네. 배에 스텐 스테플을 수십개 찍어
붙이고도 안아프다니. 나도 와이프도 너무 믿기 힘들었습니다. 테이프 뗀자리 쓰린것이 가장 아픈정도니 아프다고하면 욕먹지요.
움직이면 20-30분간 배속이 좀 땡기는것 정도.
그저께부터 걷기 연습하여 어제는 300보, 오늘도 300-400보 병원 복도를
걸었습니다. 플락도 저절로 오르기 시작했고, 양은 적지만 병원에서 주는
햄버거, 튀긴 생선까지 다 잘 소화 시키고 있습니다. 하루 Tacrolimus 6mmg, Deltisona 20mg로 일단 거부반응 레벨도 안정되었습니다. 모든 간 활동이
일부분은 빠르게 일부는 서서히지만 모두 시작했다는 검사 결과를 보자마자,
집에서 잘먹고 빠른 회복이 제일 순위라고 6일만에 퇴원시켰습니다.
더구나 6월 24일은 저희 부부 35주년 결혼 기념일이었습니다.
그간 고생만시키며 30년이상 시부모 모시고, 지난 2년간 친동생 암수술,
장인 척추 수술등으로 고생의 연속이던, 와이프에게 오랜만에 웃움을
주었답니다.
처제, 장인 장모님 화이팅!!!
앞으로 좋은 일만 계속할껍니다.
이식 일주일 전, 다니던 성당 신부님께서 장모님댁 방문하시여 기도하여 주시고, 별안간 더욱 많은 친지들의 성원 이메일이 여러통오고.
이래서 우연은 없고 필연의 연속이 삶이라더니. 내가 뭐 잘한게 있다고
이런 인연들이 계속되다니.